바우하우스 조형과 자동차 디자인의 관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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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relevance between automobile designs and the design works of Bauhaus, which has been rarely mentioned so far. First, the study outlined the era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changes in technology as backgrounds in forming the Deutsche Werkbund and Bauhaus designs with their ideas and concepts. With the bases of the observations, a parallel study has been done as the backgrounds of the form factor from Le Corbusier and Walter Gropius related to DWB and Bauhaus. Based on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automobiles designed by these entities, relevance between the characteristics of the automotive designs and the designs of Bauhaus decreased.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designs of Bauhaus and other automobile designs were not fundamentally different in pursuing efficiency and pragmatism in relation to the requirements of the mass production industry era, even if they looked different from each other.
Keywords:
Bauhaus, Automobile design, Le corbuisier, Walter gropius, Expressionism, De stijl키워드:
바우하우스, 자동차 디자인, 르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표현주의, 신조형주의1. 서 론
오늘날의 디자인 연구나 담론에서 「바우하우스(Bauhaus)」를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근대적 개념의 디자인이 태동하던 시기에 바우하우스는 그 교육활동에서 인물(人物)이나 양식(洋式), 산업(産業) 등의 방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교육과 방법을 과거 문화에 연루시키지 않는 자세로 해결하려 했으며, 그것의 실천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1)도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우리나라의 디자인학계 일각에서도 1919년에 개교한 바우하우스의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바우하우스 창립 100주년’이라는 주제로 세미나와 저술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은 바우하우스가 오늘날의 디자인에서 변함없이 큰 비중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자동차 디자인 분야의 연구와 담론에서 바우하우스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것은 바우하우스에서 다루었던 조형이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다루는 스타일 디자인(Styling design)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우하우스는 산업혁명 이후 수공예에서 벗어난 산업 체제에서 대량 생산방식에 적합한 조형의 교육을 위해 직조, 도자, 가구, 공간, 사진, 공연 예술,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했지만, 차량 디자인과의 직접 관련성은 찾아볼 수 없으므로, 자동차 디자인과 바우하우스의 관련성이 낮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바우하우스와 자동차 디자인과의 관련성을 살펴볼 때 두드러지는 두 인물이 있는데, 그들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이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활동 직후에 바우하우스 창립과 아울러 학장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편으로 르코르뷔지에는 바우하우스 창립에 직접 관련된 인물은 아니지만, 그로피우스와 함께 활동했고 근대 건축과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피우스의 조형관에도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가 각각 차량 디자인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이들 두 인물 발터 그로피우스와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차량으로 1931년에 등장한 「아들러(Adler)」 승용차와 1936년에 완성된 「노이쳐 미니멈(Noiture Minimum)」 승용차의 디자인과 바우하우스 조형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본 논문의 구조를 Fig. 1에서 제시하였다. 먼저 바우하우스 창립의 바탕이 된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변화를 개관하고, 공예에서 산업으로의 전환 시기에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조형관, 그리고 발터 그로피우스와 르코르뷔지에 두 인물의 조형적 배경 등을 살펴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들이 디자인한 차량의 특징을 고찰하여 디자인에서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조의 본 논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산업혁명과 기술 변화 고찰
- 산업혁명과 기술 변화 고찰
- 바우하우스와 차량 조형 특징의 관련성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바우하우스의 역사적 맥락이나 그와 관련된 인물의 조형 철학의 상세 분석 등 이미 타 연구에서 빈번히 다룬 내용보다는 본 연구의 대상이 된 차량과 바우하우스 조형성의 특징 비교에 비중을 두었다.
2. 바우하우스의 배경
2.1 산업혁명과 독일공작연맹
바우하우스의 창립은 그것을 전후한 시대의 기술과 산업의 변화와 사회의 변혁 등에 의한 사회적 압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17세기에 영국의 증기기관 발명으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제조업의 공예에서 산업으로 전환과 농업 중심 경제 구조에서 제조업의 비중 증대로 나타났다. 여기에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러시아의 공산혁명과 니콜라이 2세(Николай II) 황제의 실각, 구축주의(Constructivism) 출현2) 등의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1871년에 통일된 독일 제국의 초대 총리였던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는 이러한 영국의 산업화 이후 이어지는 변화에 대응하고자 건축 이론가였던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를 1886년에 런던 주재 독일 대사로 파견해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후 영국의 공예운동이나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을 뛰어넘는 활동을 주도하고자 1907년 10월에 열두 명의 기업인과 열두 명의 미술인을 모아 뮌헨에서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을 결성1)한다.
독일공작연맹은 “독일의 역사와 국가 정신을 담고 있는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기치로 건축가, 예술가, 기술자, 경영자 등이 참여해 적극적으로 기계를 도입하고 공업, 예술, 수공예가 합심하여 독일의 공업제품을 양질화, 규격화, 표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었으며, 이는 바우하우스 설립의 기초가 된 것으로 평가 된다.1)
독일공작연맹 창립에 참여했던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는 1909년부터는 「아에게(AEG)」사에서 터빈 공장 건축과 다양한 전기제품 개발을 맡았고, 당시에 20대 초반의 청년이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Édouard Jeanneret,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본명; 1887~1965) 등을 문하생으로 두게 된다.3) 이들 중에서 그로피우스는 1912년부터 독일공작연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2.2 바우하우스의 창립과 현재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명칭은 중세에 고딕 성당을 건축하던 장인 집단 ‘바우휘테(Bauhutt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 문헌에는 그로피우스가 「바우휘테」를 현대적 발음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는 해설4)도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운영 시기는 Table 1과 같이 크게 네 범주로 구분된다. 이들 중에서 마지막 시기인 1937년부터 1938년까지의 기간은 미국의 시카고(Chicago)에 세워졌으며, 명칭도 「뉴 바우하우스(New Bauhaus)」라고도 불렸다.
바우하우스 교육의 목표는 모든 조형 분야가 협력하여 하나의 총체적 예술을 달성할 수 있는 현대판 바우휘테를 만드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수공예로 돌아가 ‘대건축’을 창시하기 위한 중세적 길드(Guild)를 조직한다는 복고적 이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목표는 일관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후에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4)
이러한 변화는 바우하우스의 기장(記章)에서도 볼 수 있다. Fig. 2에서 왼쪽의 것은 창립 당시에 자체 콘테스트에서 채택된 도안으로 학생 카를 페테르 룔(Karl Peter Röhl)의 것이며, 오른쪽은 1922년에 교수였던 오스카르 슐렘머(Oskar Schlemmer)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왼쪽 초기의 것은 표현주의(Expressionism)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며, 오른쪽 후기의 것은 기하학을 추구한 네덜란드의 신조형 운동인 데 슈틸(De Stijl)의 영향이 있었다고 평가된다.4)
바우하우스는 1996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Convention)」으로 등재됐으며, 그와 관련된 시설물에는 뎃사우의 바우하우스 건물(Bauhaus Building in Dessau), 데사우의 학장 관사(Master’s Houses in Dessau),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건물(School of arts and crafts in Weimar)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2017년에 추가로 바이마르의 암 호른 하우스(Haus Am Hornin Dessau), 뎃사우의 발코니 주택(Houses with Balcoy Acess in Dessau)과 베르나우의 전 노동조합 학교 건물(Former ADGB Trade Union School in Bernau) 등이 더해져 등재4)되었다.
현재는 바우하우스의 조형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한 「임시 바우하우스 조형 아카이브 뮤지엄 사이트(The temporary bauhaus-archiv museum für gestaltung)」가 잠정적으로 운영된다는 내용과 함께 홈페이지(https://www.bauhaus.de/en/)가 있다.
2.3 바우하우스의 과목과 교수진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은 다양한 과목으로 구성되었으나, 초기에 회화 교육을 담당하던 교수(Master) 중에서 잇텐(Yohanes Itten)과 슈라이어(Lothar Schreyer)가 사직한 1923년이후부터 교육 이념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표현주의(Expressionism)로 평가되던 시기의 마감을 뜻하며, 이후 칸딘스키에 의해 공작교육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신조형주의(De Stijl)로의 변화가 나타났다4)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평면적 교육에서 입체적 교육으로 바뀌면서 제작공법과 밀접한 조형을 다루게 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재정비된 교육과정은 1923년 여름에 열린 「바우하우스 전시회」와 함께 발간된 책자의 도표 Fig. 5에 나타나 있었으며, 새로운 교육과정은 예비교육, 공작교육, 건축 교육 등 3년 3단계로 나누어져 있음4)을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교수진 중에는 군타 스퇼즐(Gunta Stölzl) 등과 같이 바우하우스의 학생으로 입학해 졸업한 이후 공방의 장인(Master)이 된 인물도 있으나, 다양한 시기와 계기를 통해 초빙된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 다수의 자료4-6)를 교차 확인한 교과목과 교수진의 구성은 Table 2와 같다.
Table 2의 작성에서 참고한 자료 중 하나의 국내 도서4)에는 국문으로 ‘엥겔만’으로만 표기된 교수 이름이 있으나, 브리태니커 사전의 사이트(www.britannica.com/topic/Bauhaus)5)에서 바우하우스를 다룬 내용에는 ‘아케르만(Walter Ackermann)’ 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그의 근무 기간과 담당 과목은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고 선생(Teacher) 이라고만 표기5) 돼 있다.
종합적인 바우하우스의 교육 특징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 변화되는 산업에서 요구되는 조형을 건축을 중심으로 다방면을 다루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4 바우하우스의 조형 특징
바우하우스의 조형 특징이 더욱 명확해진 것은 그로피우스가 학장을 사임한 1925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26년에 알베르스가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보여주는 Fig. 6은 간결한 기하학적 성향으로의 조형성 변화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알베르스는 초기에 직조와 회화를 담당했으나 이 시기에 광고 포스터 등의 그래픽 디자인 분야로 새로운 시도를 전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문자체에서도 세리프(Serif)라는 장식이 존재하는 고전적 형태의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에서 벗어난 더욱 단순화된 서체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러한 조형은 실내와 직조, 건축 등의 분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우하우스는 1926년 10월에 조형대학으로 승인되었으며, 기하학적 양식의 새 건물을 뎃사우(Dessau)에 지어 1926년 12월 4일 준공식을 열고 교육을 시작한 제2기 시기부터 조형 양식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뎃사우의 제2기 바우하우스 신축 건물은 변화된 기하학적 조형 성향을 반영한 양식인 동시에, 최초의 커튼월(Curtain wall) 구조를 가진 건축물7)이기도 하였다.
바우하우스의 조형 변화는 1930년 1월에 발표된 바우하우스의 조직계획에도 나타났으며, 바우하우스의 생산활동은 「건축부」와 아울러, 사진 공방⋅조소 공방⋅인쇄 공방으로 구성된 「광고부」, 벽화 공방⋅금속 공방⋅직물 공방으로 이루어진 「실내 디자인부」, 그리고 염색⋅직조 등의 제작으로 구성된 「직물부」 등의 네 개 부문4)이라는 내용에서 볼 수 있다. 인쇄 공방은 마이어(Hannes Meyer)의 사임 후 그래픽 아트를 맡은 슈미트(Joost Schmidt)가 광고미술 방향으로 전환해 가장 활발한 공방의 하나로 후반기의 특징이 됐다4)고 한다. 이러한 바우하우스의 조형성 변화를 요약한 것이 Table 3이다.
3. 주요 인물과 조형의 특징 고찰
본 장에서는 연구 대상 차량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인물 르코르뷔지에와 그로피우스를 그들의 조형성 배경과 주요 사례로써 개관한다.
3.1 르코르뷔지에와 조형
샤를 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또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건축에 공헌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프랑스 국경에서 500 km 떨어진 불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서북부 지역 뇌샤텔주(Neuchâtel州)의 쥐라(Jura)산맥의 라 쇼 드 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 지역의 전통산업이었던 시계 세공을 배우기 위해 「라 쇼 드 퐁 미술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익히지만, 그의 스승은 그에게 건축 공부를 권유3)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미술학교 재학 기간에 유럽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 1907년에는 파리로 가서 프랑스 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선구자로 불린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 1874~1954)의 설계 사무실에서 일하였다. 이후 1910년과 1911년에는 건축가 피터 베렌스의 베를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미스 반 데어 로에, 그로피우스 등을 만나게 된다.
이후 르코르뷔지에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4년간 스위스에서 지내면서, 모교 「라 쇼 드 퐁 미술학교」에서 강의하며 건축 기술을 연구8)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돔 이노시스템(DomIno System)」7)으로, 이는 건물 기초에 콘크리트 슬래브(Slab)와 기둥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다른 층의 슬래브와 기둥을 얹는 구조로 벽체가 내력 구조를 가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뎃사우 바우하우스 건물 역시 돔 이노 시스템의 구조를 바탕으로 외부를 유리로 마감한 형식의 커튼월 구조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9) 그의 돔 이노 시스템은 주택의 대량생산을 위한 물리적 플랫폼의 원형이었으며, ‘돔 이노’라는 이름은 도미노 게임의 조각들을 합친 것이며, 라틴어로 집을 의미하는 도무스(Domus)로 읽힐 수도 있다는 해설10)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상업용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커튼월 구조는 건축물의 외피(外皮)를 이루는 유리창이 구조물을 지탱하는 내력벽(耐力壁)이 아니라는 특징이 있다. 즉, 건축물의 외피는 건물 외부의 기후 조건과 실내 거주자를 나누는 용도로만 존재하며, 이에 따라 건축물의 외관은 주로 유리로 덮여 있는 모습으로 기둥은 강조되지 않는 형태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11)이다.
1918년에 르코르뷔지에는 입체파 화가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을 만나,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장팡은 그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격려하는 등 합동 작업을 시작하며, 르코르뷔지에의 조형은 1948년에 완성된 「모뒬로르(Modulor)」체계에서 건축적 비례의 척도로서의 「황금비(Golden Section)」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의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례(Vitruvian Man)」,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중세건축 작업 등이 인체의 비례를 건축의 외관과 기능을 개선하는 데에 이용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 역시 그 전통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그는 황금비를 반영한 인체 측정학(Anthropometry)과 피보나치수열(Fibonacci numbers)로써, 당시 건축에서 쓰이는 서로 다른 단위의 미터법(Metric)과 피트법(Feet-inches)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모뒬로르」 체계의 토대를 완성12)한다.
그는 이러한 수학적 비례를 모더니즘의 중심으로 생각했으며, “모던 하다는 것은 패션이 아니라 국가”이며, “집은 생활을 위한 기계”라고 주장13)하였다. 그러한 그의 생각은 독일의 기술 역사 연구가 뫼저(Kurt Möser)14)의 주장처럼 20세기 초에 헨리 포드(Henry Ford)가 고안해낸 일관생산방식(一貫生産方式), 일명 「포드주의 대량생산 방식(Fordism)」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3.2 그로피우스와 조형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 1883~1969)는 베를린에서 아버지 발터 아돌프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ropius)와 어머니 마논 아우그스테 폴린 샨베레르(Manon Auguste Pauline Scharnweber) 사이의 세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 마틴 그로피우스(Martin Gropius; 1824-880) 역시 건축가였다고 하며, 그러한 집안 내력의 영향으로 그로피우스는 1903년부터 뮌헨공과대학에서, 1905년부터 1907년까지는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15)했으며, 대학 졸업 후 1907년부터 1910년까지 피터 베렌스의 문하생으로 일했다.
이후 그로피우스는 독일공작연맹에 참가하면서 만난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1863~1957)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19년에 바이마르에서 창립된 바우하우스는 바이마르의 「그랜드 듀칼 예술 공예 학교(Grand Ducal Arts and Crafts)」와, 1860년에 바이마르 대공이 세운 「미술 아카데미(Grossherzolische Sachisiche Hochschule fur bildende Kunst) arts)」가 합병되어 1919년 4월에 시작16)됐으며, 이때 사용된 건물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를 위해 앙리 반 데 벨데의 설계로 1906년에 건축된 것이었다.
이 건축물은 전반적으로 아르누보 지향의 성향에 기둥의 양감이 강조된 고전적 인상의 파사드(Façade)를 가지고 있으나, 반복되는 철제 사각형 창틀에 끼워진 유리창으로 인해 모던한 조형이 결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창틀의 형태는 이후에 발터 그로피우스와 아돌프 마이어가 공동 설계한 「파구스 공장(Fagus factory)」에서 유리 벽체를 가진 커튼월(Curtain wall) 구조와 유사성이 보이기도 한다.
3장 1절에서 언급한 뫼저(Kurt Möser)의 주장14)에 의하면, 이 시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미국의 헨리 포드가 고안해낸 대량생산 방식은 우상과 같이 받아들여졌다고 하며,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와 같은 건축가들은 ‘제2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라는 관점으로 포드의 대량 생산방식을 수용했으며, 1920년대의 많은 예술가는 삶이 점점 더 체계적으로 기술적 연관성의 영향을 받는다며 환호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진보적인 대규모 시스템이었던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세계를 변화시킬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15년을 전후로 미국 포드자동차에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산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온 대량생산 방식은 오늘날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비견될만한 현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세기의 특성이 달력상의 날짜가 바뀐 뒤로 15~20년이 지난 이후부터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의 견해17)와 상통하는 것으로, 수공예방식이었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바꾸어놓은 100년 전의 기술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헨리 포드는 차량의 원가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부품을 규격화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차량에서 옵션을 없애고 차체 색도 검정으로 통일하는 등 극도의 단순화를 통한 생산 효율성을 추구18)했다. 「백색 사회주의(White Socialism)」14)라고 불리기도 한 이러한 포드 생산방식의 영향은 그로피우스에게도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초기의 표현주의적 조형 성향에서 변화된 파구스 공장을 비롯한 그로피우스의 건축물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단순성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차량 디자인의 고찰
4.1 1931년형 Adler Standard Sedan
20세기 초에는 유럽 자동차 기업 대부분이 여전히 공예 생산방식으로 차량을 제조하고 있었으며, 그들 중의 하나였던 독일의 자동차 제조 기업 「아들러(Adler)」는 1886년에 하인리히 클라이에르(Heinrich Kleyer)에 의해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자전거 제조 회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899년에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으며, 이후 차량 생산을 재개하면서 1929년에 그로피우스에게 새로운 차량의 디자인을 의뢰하게 된다.
새로운 차량의 목표는 더 큰 공간을 가진 대형 승용차의 개발19)이었고, 창업자 하인리히는 그로피우스와의 친분20)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형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장이었던 그로피우스에게 이 차량의 디자인을 의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차량은 초기에는 6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로 나왔으나, 축간거리(Wheelbase)를 3,325 mm로 늘리고 차축의 폭도 더 넓혀 실내공간을 늘린 차량으로 변경된 것이었다. 늘어난 차체는 2열의 좌석을 가진 4인승 승용차였으며, 엔진 배기량은 8기통에 3,887 cc로 큰 차체에 맞는 엔진을 탑재하였으며, 4단 수동 변속기를 탑재하였다.
그렇지만 기록에 의하면 기구적 개선보다는 마케팅 측면에서 그로피우스의 디자인 참여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강조19)를 볼 수 있다. 이후 그로피우스라는 이름과 관련된 리무진과 컨버터블 등 두 대의 차량이 1930년도의 「파리 오토살롱(Salon de l’Automobile)」에서 선보였다.
당시에 바퀴살(Spoke)로 구성된 고전적인 휠과 다르게 스포크가 없는 매끈한 원판형 휠(Disc wheel)의 채택과 앞 유리 측면에 작은 헤드라이트 등이 특징적이다. 초기 대량생산 자동차 제조의 특징인 회주철 및 연철 대신, 전체가 금속으로 제작된 차체, 유압식 4륜 브레이크 및 도금된 부품을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독일 생산 차량19)이었다.
차체 측면의 넓은 발판, 카메라 렌즈를 제조하는 기업 「카를 자이스(Carl Zeiss)」에서 제작한 대형 헤드램프, 크롬 도금 휠, 높은 후드, 강조된 라디에이터 그릴 등으로 파리 오토살롱에서 주목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 차량의 디자인에서 라디에이터 그릴의 독수리 형태의 장식 역시 그로피우스의 디자인이라고 하며, 이는 그로피우스가 포병대 장교로 복무하기도 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당대에 제작된 차량은 남아있지 않고 재현 제작된 차량(Replica)만 존재하고 있다.
4.2 1936년 Voiture Minimum
르코르뷔지에는 1936년도에 그의 사촌이자 사업 관리자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와 함께 프랑스 자동차공학회 「Société des Ingénieurs de l’Automobile(SIA)」가 후원하는 디자인 공모전에 가격이 8,000프랑을 넘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대량생산 승용차의 콘셉트를 출품했다. 그러나 그의 출품작은 디자인 공모전에서는 수상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그는 차량 길이는 3,750 mm, 너비는 1,850 mm이며, 높이는 너비와 거의 같도록 제안했으며, 앞쪽에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고 뒤쪽에 추가 인원을 위한 측면을 향해 앉는 1인 좌석을 배치한 내부 공간을 계획하였다. 앞쪽에는 화물과 예비용 타이어 2개를 싣기 위한 공간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유럽의 도로 상황을 고려하면 것이었다. 그리고 곡선형 지붕에는 날씨가 좋을 때 열 수 있는 슬라이딩 패널을 계획했다.13)
실제로 르코르뷔지에는 자동차의 애호가였다고 하며, 그런 이유에서 그의 건축이나 도시 계획에서 자동차의 동선이나 회전 반경 등을 고려한 설계가 많았던 것으로부터 그러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13)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였던 「브아쟁(Voisin)」에서 1926년에 내놓은 승용차 모델 「브아쟁 C7 루미뉴즈(Voisin C7 Lumineuse)」를 소유하고 있던 르코르뷔지에는 20세기의 신기술의 대표인 자동차의 기동성과 활용성에 매료되어 그의 건축 디자인이 자동차의 영향을 받은 것21)으로 보인다.
르코르뷔지에가 공모전에 출품한 뒤로 약 50여 년이 지나 1987년에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는 르코르뷔지에의 「Voiture Minimum」의 디자인을 재현한 목재 모형을 제작하였다. Fig. 21은 쥬지아로가 제작한 모형의 이미지이며, 이로써 반세기 넘게 종이로만 존재했던 르코르뷔지에의 자동차 디자인은 입체적인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22)
이때 쥬지아로는 「Voiture Minimum」의 차체 외형을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제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래의 르코르뷔지에가 공모전에 출품한 스케치 도면을 바탕으로 실내의 앞 좌석에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뒤쪽에는 측면을 바라보며 앉는 1인 좌석을 배치한 내부의 렌더링(Interior rendering)도 제시하였다.
4.3 차량 조형 특징 분석
대체로 차량의 조형적 특징은 차량의 동력성능을 평가하는 동적 평가(動的 評價; Dynamic assessment)를 제외한 정적 평가(靜的 評價; Static assessment)를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차량의 조형은 정적 평가의 관점에서 차체 전체 스타일(Body style character), 조형 특징(Shape character), 형태 규칙(Shape rules), 기능 목표(Functional goal), 기술 지향성(Technology orientation) 등으로 형태 특징에서 추상적 특징으로 점차 거시적 관점으로 살펴보게 된다.23)
이것은 다시 몇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며, 이 요소는 전체적인 차량의 조형성을 구성하게 된다. 오늘날의 차량 디자인에서 차체의 디자인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먼저 차체 스타일 특징은 차량의 전면과 측면의 특징으로 구성된다. 차체 전면의 이미지는 대체로 그 차량의 성격이나 디자인 특징을 대표하는 성격을 가지며, 차체 측면의 이미지는 그 차량이 가진 각각의 공간 요소를 위한 배분 비례에 의한 용도와 실용성을 나타내는 구조적 요소를 반영하게 된다.23)
이러한 관점에서 차량 전면 이미지를 보면 「아들러(Adler)」 세단은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날개 형태의 장식으로 정교하고 존재감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표현주의 양식의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반면 「Voiture Minimum」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조형으로 마치 신조형주의 경향 「데 슈틸」의 이미지와 아울러, 차체 측면의 러닝보드(Running board)가 없이 휠 아치 부분까지의 전체 폭을 모두 실내공간으로 만들어 실용적 공간을 최대 확보한 차체를 볼 수 있다.
차체 측면 이미지에서 「아들러(Adler)」 세단은 넓은 공간을 가진 차체를 강조하면서 인락성과 크기를 보여주지만, 「Voiture Minimum」은 작은 크기의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고려가 주요한 특징으로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볼 수 있다.
Fig. 27의 르코르뷔지에의 초기 스케치는 운전석의 공간 배분과 앞쪽과 뒤쪽의 수납공간, 그리고 차체 폭의 결정 요인, 엔진의 배치 등에 관련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다.
Fig. 28의 차체 비례의 수학적 분석은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이 아니라, 후대에 「Voiture Minimum」 차량의 치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구조의 분석22)이다. 여기에서는 차체의 모든 부분에서 구조적으로 기하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Voiture Minimum」은 황금비를 바탕으로 하는 수학적 질서에 의한 차체 공간의 크기 설정과 스티어링 휠의 위치 선정 등에 의해 단지 감각적인 요인에 의해 차체의 형태를 결정하지 않고, 수학적 비례에 입각한 형태 결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러(Adler)」 세단과 「Voiture Minimum」의 차체 형태와 구조에서 이러한 대비되는 특성은 다른 분석 요인에서도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다. 전체 조형에서 「아들러(Adler)」 세단이 곡면의 장식적 성향인 데에 비해 「Voiture Minimum」은 평면적이고 기능적인 조형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조형의 규칙성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며, 「아들러(Adler)」 세단과 「Voiture Minimum」이 각각 시각적 균형과 기하학적 비례를 추구했음이 대비되고 있다.
이러한 두 차량의 상반된 성격을 정리한 것이 Table 5이다. 기능적 목표에서 「아들러(Adler)」 세단이 공예적 조형으로 정교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여준다면, 「Voiture Minimum」은 실용주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인 차량의 기술 지향점에서 「아들러(Adler)」 세단이 장식 요소로 예술적인 조형 성향을 강조하는 데에 비해서 「Voiture Minimum」은 단순한 조형으로 대량생산에 적합한 차량 성격을 지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 조형 관련성의 분석
5.1 바우하우스 조형과 자동차 조형
앞서 2장의 내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반적인 바우하우스 조형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때 Table 3에서 본 바와 같이 상반되는 경향이 공존하거나 혹은 시차를 두고 나타났음을 볼 수 있었다. 즉, 바우하우스의 조형은 스타일에서는 시간의 흐름에서 표현주의와 신조형이 모두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피우스는 대량 생산방식에 맞는 조형 양식의 구현과 교육에 주력했지만, 한편으로 공예적 조형, 또는 표현주의적 조형에 대한 태도 역시 관찰할 수 있다.
4장 3절의 분석에서와 같이 「아들러(Adler)」 세단과 「Voiture Minimum」은 그 형태와 기능에서 대체로 대비되는 상반되는 특성을 볼 수 있다. 이들 두 차량의 특성을 자동차 디자인 이라는 범주로 통합한다면, 자동차 디자인의 특성은 거시적 관점에서는 차량의 성격에 따라 상반되는 특성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바우하우스의 조형과 각 차량의 폼팩터와 대비시켜서 본다면 Table 6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바우하우스의 조형과 비교해 본다면 Table 7과 같이 다시 정리할 수 있다. 이 내용의 비교는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특징과 본 연구의 4장에서 살펴본 두 종류의 자동차 디자인 분석을 겹쳐서, 이들 중에서 음영이 옅게 표기된 영역의 기능적 목표를 제외한 조형성과 기술적 지향점에서 거시적으로는 서로 유사한 속성을 가진다는 분석 결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본 연구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우하우스에서 다루었던 조형에 관한 인식이 일반적인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다루는 스타일 디자인(Styling design)과는 다른 속성이라는 관념과는 배치(背馳)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교의 결과는 지금까지 여겨지던 바우하우스의 조형, 즉 기능과 형태의 관계, 혹은 장식적 형태와 기능적 형태에 관한 한 엄격한 기능주의로 대표된다고 하는 특성은 실체적으로는 명확하게 독립된 이념이나 특징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5.2 조형의 관련성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형태와 기능에 관한 논의에서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조형은 장식의 배제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대량생산의 산업 체제에 맞는 조형의 추구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서술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2장과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우하우스의 조형 자체도 초기의 표현주의 지향에서 신조형으로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바우하우스의 조형 철학이나 교육 이념 자체가 변화했다기보다는, 시각적 표현 중심에서 공방 교육 강화로 실질적 제작이나 생산에 더 비중을 두는 교육 변화로 나타난 것임을 볼 수 있었다.
대체로 자동차는 차체 스타일 조형(Body style design)에서 감성 요인(Aesthetic factor)이 크며, 그 속성(屬性; Attributes)은 ‘기하학적/유기체적 형태’와 그 감성의 효과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형태 비례(形態 比例, Shape proportion)’와 ‘형태주파수(形態周波數, Shape frequency)’24) 등의 세부 요인이 있는 등으로 감성 요인의 비중이 높은 스타일이 먼저 파악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조형이 건축에 바탕을 둔 채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식에 맞는 합리적 조형이라는 관점에서 향후의 모빌리티가 이동 수단으로서의 자동차보다는 움직이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자동차 디자인의 관점 역시 달라진 방항으로 발전되어 갈 것이라는 맥락에서 추가적인 바우하우스 조형의 연구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6. 결 론
본 연구에서 살펴본 바우하우스 조형과 자동차 디자인의 관련성은 적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다룬 고찰 대상이 바우하우스나 모던 양식과 관련한 두 인물이며, 그들이 디자인한 두 종류의 차량으로 고찰과 분석이 진행된 것은 이 연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 논문의 연구 방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해석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는 복잡해 보이는 대상이 그보다 단순한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제하고, 전자에 대한 설명을 후자의 설명으로 대체하는 입장25)을 의미한다.
이것은 효율적인 연구 방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속성을 가진 연구 대상의 특징을 놓칠 개연성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시한 바우하우스와 자동차 디자인 간의 관련성에 관한 시사점을 토대로 모빌리티의 디자인 개발에서 바우하우스의 기능적 조형의 반영을 위한 실증적 연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것은 미래의 모빌리티가 단순히 이동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거주 공간으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공간의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승객 친화적인 모빌리티를 디자인해야 하는 총체적 목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년도 정부(교육부, 산업부)의 재원으로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신기술융합디자인 혁신인재양성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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